Kang Heejung uses books as a medium in her artistic practice. Her interest in books dates back to her years studying in Germany and continues to this day. Rather than serving the purpose of reading, the books in Kang’s work are primarily appropriated as aesthetic clues or personal relics, taking the form of objects or things in their own right. When Greek mythology enters the picture, her works become secretive clues in which the world of myth overlaps with the closest and most familiar aspects of everyday life. They might perhaps be understood as objects and spaces of consolation.
A mythological figure that frequently appears in her work is the Gorgon, the three sisters of Greek mythology, among whom Medusa is the best known: anyone who looked directly at her was turned to stone. Kang takes the narratives of Greek mythology and objects that have endured over long periods of time as subjects of metaphor, a thread that runs throughout her practice from her early works to the present. The amphora, a long-necked earthenware vessel with a flat base used for holding oil or wine, and the kylix, a stemmed wine cup, also appear frequently in her work.
Her Bathtub Prequel (2015) is another work that cannot be overlooked. While studying abroad, Kang turned over a desk she had used in Germany and developed it into a bathtub. After returning to Korea, the Bathtub was newly remade through successive iterations in Jeju and Seoul. Bathtub Prequel followed the trajectory of the artist’s life. Here, the bathtub can be understood as an object and material imbued with multiple meanings, as well as a kind of cultivating vessel connected to the artist’s body. As an object that holds water and a place for cleansing the body, the bathtub resembles a ritual space embedded in everyday life. At the same time, it can be understood as a starting point for cultivating all forms of life, and as a material through which all of this is set into circulation.
Kang Hee-jung’s artistic world begins with the metaphors of mythology, then connects with books as objects and the various signs contained within them, continuously multiplying, dismantling, and recombining itself. Grounded in mythological narratives, she seeks to remain in a state of perpetual navigation. What first catches the eye in her work is the way two-dimensional and three-dimensional forms rely on one another. Next, unfamiliar objects from Greek mythology draw our attention. Composed of a mixture of various materials, these objects are the results of bricolage while also functioning as signs in their own right. Two-dimensional paintings and three-dimensional objects are connected in seemingly awkward ways, leaning against one another throughout the exhibition space. In this way, her work is always arbitrary and, for the most part, unstable.
강희정은 책을 작업의 매체로 활용한다. 책에 대한 관심은 독일 유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 강희정의 책은 독서의 용도보다 주로 오브제나 일종의 사물로 전유된 미학적 단서 혹은 개인적 유물로 표상된다. 여기에 그리스 신화가 접속되면 그의 작업은 가장 가까운 일상과 신화의 세계가 겹쳐진 비밀스러운 단서가 된다. 아마도 위안의 대상이자 공간일 것이다. 그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신화적 인물은 고르곤 (Gorgon,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 자매. 그중에서 그녀의 눈을 본 사람은 돌로 변해버리는 메두사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다. 강희정은 그리스 신화의 서사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사물을 은유의 대상으로 삼는데, 이는 초기작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기름이나 술을 담는 용도의 목이 길고 아래가 납작한 토기 암포라(Amphora)와 굽다리 포도주잔 카일릭스(Kylix)도 작업에 자주 등장한다. <욕조 프리퀄>(2015)도 빼놓을 수 없다. 강희정은 유학 중에 독일에서 사용하던 책상을 뒤집어 욕조를 만드는 작업을 전개했고, 작가의 귀국 후 <욕조>는 제주-서울을 거쳐 새롭게 재제작된다. <욕조 프리퀄>은 작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다녔다. 여기에서 욕조는 다양한 의미가 내재된 사물이자 물질이며 작가의 신체와 연결된 일종의 배양체로도 볼 수 있다. 욕조는 물을 담는 사물로, 신체를 정화하는 장소로 기능하기에 일상에서 이뤄지는 제례 공간과도 같다. 동시에 모든 생명을 배양하는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또한 이 모든 것을 순환시키는 물질이다.
강희정의 예술세계는 신화의 메타포에서 시작해 오브제로서의 책,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다양한 기호들에 접속하면서 증식되고 해체되었다가 다시 재조합된다. 그는 신화적 서사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항해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평면과 입체가 서로 의지하는 형상이다. 그다음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낯선 사물들이 시선을 끈다. 여러 질료가 혼합된 이 사물들은 브리콜라주의 결과물이자 하나의 기호로 작동한다. 그리고 평면 회화와 입체물은 어색한 듯 연결되어 전시장 곳곳에 기대어 있다. 그렇게 그의 작업은 항상 임의적이며 대부분 불안정하다.
그렇다면 그에게 신화란 무엇인가? 작가로부터 신화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들은 적은 없다. 다만 강희정이 자신의 일상을 신화적 플롯과 연결하게 된 계기는 작업에 대한 글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를 탐독하면서 처음에는 서사에 집중했으나 자연스레 신화와 고대 미술 속 인물의 표현에 관심이 기울어졌다. 작가는 신화 속 이야기와 등장인물 그리고 그 배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연극무대와 같은 공감각적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평면 회화는 서서히 구조적인 얼개에 의한 입체적인 작업으로 진화한다.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작업을 통해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일상과 신화적 세계라는 또 다른 차원을 엮기 시작한 것 같다. 이와 같은 경험의 시간은 동서양 신화 이미지를 기호학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이처럼 강희정은 회화와 입체, 기호와 신화, 시각과 언어 사이를 종횡으로 넘나들며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평면과 입체가 공존하는 작업 방식, 회화도 조각도 아닌 어떤 상태, 온전히 완성된 것인지, 아니면 진행 중의 작업인지도 불분명하게 보이는 설치 방식을 살펴보아야 한다. 신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작가는 전형적인 회화의 방식보다는 몸으로 감각하면서 형태를 다루고, 그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나타나는 착시 또는 예측할 수 없는 색채와 조형적 변수를 발견한다. 작가는“학부 시절 한 화면에만 집중하는 게 어려워서 캔버스를 멀리했지만 2018년부터 작은 화면을 연결해 회화를 지속하는 방식을 실험하면서 새로운 기운과 활력을 되찾았음에도” 빛과 외부 환경에 예민한 그림의 속성을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 바 있다. (강희정 개인전
이번 전시 <올드스쿨 스펙터클>(2026)에서 강희정은 속도전으로 치닫는 동시대를 질문한다. 그의 작업의 기점인 암포라를 비롯한 신화적 기호 사이에 자신의 일상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끼어들기 시작한다. 자신의 일상복을 접어 그것을 사물화하고 그 안에 물을 담아 카일릭스를 변주한다. 오늘날 일상은 SNS에 의해 기록되고 열람되어 관심과 무관심으로 평가된다. 비물질화된 세계는 물질의 세계를 가뿐히 넘어 다수의 관심이 곧 존재의 이유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상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거나 폄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강희정은 이번 전시에서 의도적으로 과거로의 ‘회귀’를 제안한다. 회귀는 과거로의 도피라고 치부할 수 있다. 강희정이 제안한 ‘회귀’를 다른 관점으로 풀이한다면 프랑스 사상가 기 드보르(Guy Debord)의 우회(Détournement)의 개념과 연결될 것 같다. 오늘날 예술의 스펙트럼은 이른바 알고리즘에 의한 신자유주의의 문법을 따른다. 구독경제로 형성된 정보 그물망은 끊임없이 더 자극적이고 더 확실한 미래를 구축하여‘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조력자, 친구, 멘토’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예술을 과연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매체 환경은 더 빠르게 비물질화 되어가는 중이다. 매체로서의 물질은 시간, 공간, 자연, 환경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매체는 수용과 변용에 의해 변화하면서 진화한다. 퇴화와 진화는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퇴화는 진화의 조건이기도 하다. 예술의 진화는 양가적으로 실천된다. 디지털 세계의 수용과 물질세계의 심화로 말이다.
강희정은 인공지능화 되어가는 온라인 세계와 거리를 두고 자기 주변의 현장을 주목해 왔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가장 가까운 자신의 삶에서 출발한다. 그는 알고리즘의 흐름보다 물리적이고 일상적이며 하위적인 (소수적인) 정보를 수집해 왔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 정보란 오프라인 방식으로 유통되는 정보들을 가리킨다. 팸플릿과 전단지를 비롯해 직업과 관련된 각종 자료, 본인의 삶에서 파생되는 사물들, 필연적으로 생성되어 자신 주변에 쌓이는 것들을 창작의 재료로 끌어들인 또 다른 인물로는 일본의 작가 신로 오타케(Shinro Otake, 1955)가 있다. 그는 오랫동안 강희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의 작업실 입구에 쌓인 수많은 전단지와 홍보물은 밖에서 안으로 유입되는 정보이자 물질이다. 오랜 시간 동안 구축된 사회 시스템에서 파생된 이와 같은 사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을 운명을 맞이한다. 마치 하루살이의 삶처럼 말이다. 오타케는 목적이 상실된 이 사물들을 마치 숙성시키듯 오랜 시간에 걸쳐 폐기해 둔 후에 다시 꺼내어 마치 바로크 조각의 옷 주름을 연상시키는 숭고미를 길어 오른다.
한편 강희정과 오타케 신로와의 접점은 인쇄매체가 단지 정보만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점이다. 두 작가 모두 일상적인 매체에서 출발한다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한 매체로서의 활용법에서는 차이가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오타케 신로의 대표작이 실제로 운영되는 목욕탕 작업이란 사실이다. 강희정의 작업 <욕조 프리퀄>도 그의 모든 작업의 기원이자 자신의 뿌리와 이어져 있다(정현, 미술비평)